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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통적인 교황직과 캐나다 원주민에 대한 역사적인 사과로 기억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로마 도무스 산타 마르타 예배당에서 케빈 패럴 추기경은 “오늘 아침 7시 35분,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가 교황 성하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생애는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바쳐졌습니다”라고 발표했으며, 로마 전역의 교회 탑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폐 질환으로 오른쪽 폐 일부를 제거한 이력이 있으며, 최근 호흡기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의 건강은 한동안 “양호”하다고 알려졌지만, 이후 양쪽 폐에 폐렴이 발생하며 상태가 악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거 하루 전까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등 교황직을 끝까지 수행했다.
캐나다에서의 유산 프란치스코 교황의 캐나다 관련 유산은 2022년, 로마에서 원주민 대표단 앞에서의 사과와 이어진 캐나다 방문으로 결정적 전환점을 맞았다. 에드먼턴 인근 마스콰시스에서 생존자들과 그 가족 앞에 선 교황은 스페인어로 사과문을 낭독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식민주의적 사고방식과 강제 동화 정책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사과 없이는 용서가 없고, 용서 없이는 진정한 치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교황이 1년 후 다시 한 인터뷰에서 남긴 것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비록 일부에서는 사과의 범위가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관련 학대가 "집단 학살"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바티칸은 2023년, 식민지 시대 원주민 토지 점유를 정당화하던 ‘발견의 교리’를 공식 폐기하며 원주민들과의 화해에 진전을 보였다.
'거리로 나가는 교회'를 실천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하며 ‘거리로 나가는 교회’를 표방했다. 낡은 십자가와 단순한 흰색 제의를 입고 등장한 그는 교회의 격식보다는 소통과 실천을 강조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유럽 외 지역 출신으로는 천여 년 만의 교황이자, 아메리카 대륙과 예수회 출신으로는 최초의 교황이었다.
빈곤층, 노숙인, 성매매 여성과 함께 거리에서 미사를 집전했던 경험은 그가 '국민의 교황'으로 불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바티칸에서 이들을 초청해 오찬, 콘서트, 박물관 관람을 함께하며 포용의 메시지를 실천했다.
그는 종종 “내 백성은 가난하고, 나는 그들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해왔으며, 이는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계승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줬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의 평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 낙태, 피임 등에 대해 “교회가 편협한 규칙에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제들에게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보다 포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강조했다. 그로 인해 교회 내부에서는 찬반이 엇갈렸고, 특히 보수 성향의 지도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신도, 여성 등 다양한 목소리를 교회 의사 결정에 반영하며 교황직의 민주화를 시도했다. 2023년 시노드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가 주교들과 함께 투표권을 갖는 일이 벌어졌다.
영원히 기억될 교황 타임지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국민의 교황'으로 칭하며 “2,000년 된 교회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본질을 묻고, 현대 사회와 신자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교회 안팎을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CP24의 글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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